오후 네 시쯤이 되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색이 조금 달라진다. 아침의 빛이 부지런한 사람의 발걸음처럼 분주하다면, 이 시간의 햇살은 마치 천천히 산책하는 고양이처럼 느긋하다. 나는 그 빛이 방바닥을 조금씩 밀어내며 들어오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특별한 일은 없다. 그렇지만 그 특별하지 않음이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찻잔 하나를 꺼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작은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마치 “지금 이 순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차를 따라 창가에 앉으면,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각자의 속도로 하루를 지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전화를 하며 빠르게 걷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도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장면 속에 조용히 섞여 있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몰라도 같은 오후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찻잔에서 올라오는 김이 천천히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삶의 많은 순간들도 저렇게 흩어지며 사라졌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지나갔던 날들, 웃다가 금방 잊어버린 이야기들, 그리고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던 평범한 오후들.
아마 행복이라는 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장면들 속에 숨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크게 웃지 않아도 괜찮고, 어디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햇살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따뜻한 차 한 잔이 있고, 오늘 하루가 무사히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
나는 마지막 한 모금을 천천히 마신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은, 꽤 괜찮은 하루였다고.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